그들은 왜 이재명 대통령을 공격하는가보수는 되찾을 권력을, 일부 진보는 빼앗길 계급장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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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유시민,한동훈,김어준 (AI합성) |
보수가 이재명식 실용주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개혁 정부가 오랫동안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으로 국민 생활의 바닥을 받치고 공공주택으로 주거 불안을 낮추면서도, 기업투자와 수출, 첨단산업과 일자리를 동시에 키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보수가 오랫동안 반복해 온 “진보는 경제에 무능하다”는 공격 공식이 무너진다. 복지를 확대하면 경제가 망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면 기업이 떠나며,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성장이 멈춘다는 낡은 선동도 더는 통하지 않게 된다.
보수 정치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으려면 이재명 정부가 실패해야 한다. 민생이 어려워져야 하고, 경제 성과가 나빠져야 하며, 국민이 실망해야 정권교체의 명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성장과 분배를 함께 이루고 국민의 삶까지 개선한다면 보수가 돌아올 길은 좁아진다. 그래서 정책의 실제 효과를 따지기보다 기본소득을 ‘화폐의 사회화’, 공공주택을 ‘토지의 사회화’라고 부르며 사회주의의 낙인을 찍는다.
국민의 삶보다 자신들의 권력 복귀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일부 자칭 진보의 불안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생각과 노선만이 진보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믿는다. 기업투자를 확대하면 친재벌이라고 공격하고, 규제개혁을 추진하면 우클릭이라고 비난한다. 성장과 수출을 강조하면 진보의 가치를 배신했다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치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들이 누려온 ‘진보의 해설자’라는 지위와 계급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보인다.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과 해석을 거치지 않고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성과를 낸다면, 그동안 진보를 독점적으로 정의하고 훈계해 온 사람들의 영향력은 약해진다. 자신들의 허락 없이 성공한 개혁은 그들에게 개혁이 아닌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자신들이 없어도 잘 굴러가고, 국민이 자신들의 어려운 이념적 설명보다 눈앞의 변화를 선택한다면 그들의 정치적 존재 이유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109개 공공기관 통폐합 추진처럼 불필요한 조직과 중복 기능을 줄이는 개혁도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국민의 세금을 아끼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국가 전체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기관과 자리가 줄어들면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이 추천하거나 차지할 수 있었던 자리도 함께 사라진다. 정부 주변에서 행사하던 인사권과 영향력도 약해질 수 있다.
개혁을 말해 온 사람들이 정작 조직과 자리를 줄이는 개혁 앞에서 반발한다면 국민은 물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공공성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자리인가.
공공기관은 어느 진영의 인사를 위한 전리품이 아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조직과 기능을 정비하는 것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책임 있는 정부의 의무다.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검찰이나 경찰, 특정 기관의 권력을 지켜주는 일이 아니다. 범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며,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면서도 형사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인권과 제도의 실효성보다 진영의 구호를 앞세우며 정부에 자기 노선을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하는 또 다른 권력 행사일 뿐이다.
제도는 구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원칙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주장만이 정의라고 강요하는 순간, 진보라는 이름도 기득권을 가리는 가면으로 전락한다.
결국 보수는 다시 차지할 권력을 잃을까 두렵고, 일부 진보는 자신들의 이념적 권위와 계급장을 잃을까 두렵다.
한쪽은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면 정권을 되찾기 어려워진다. 다른 한쪽은 자신들의 허락과 해설 없이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면 정치적 존재 이유가 약해진다.
그래서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놀랍도록 비슷한 언어로 이재명 대통령을 공격한다. 한쪽은 사회주의자라고 몰아붙이고, 다른 한쪽은 진보를 배신했다고 비난한다. 공격하는 방향은 달라도 지키려는 것은 같다. 바로 자신들이 누려온 권력과 영향력이다.
그들에게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의 성공과 실패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카르텔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식 실용주의는 진보와 보수의 낡은 공식을 뛰어넘어 국민의 삶을 실제로 바꾸겠다는 정치다.
복지가 필요하면 복지를 확대하고, 성장이 필요하면 투자를 끌어낸다.
공공성이 필요하면 국가가 책임지고, 민간의 혁신이 필요하면 규제를 고친다. 판단의 기준은 이념서적의 문장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이 이 사실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보수의 색깔론이 없어도, 일부 진보의 허락과 훈계가 없어도 대한민국이 더 잘 운영될 수 있다는 사실.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낡은 이념의 계급장과 진영의 카르텔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성과로 증명되는 순간, 그들의 시대는 끝난다.
나는 확신한다.
진보와 보수의 가면 뒤에 숨어 국민보다 자신들의 권력과 자리를 먼저 챙기는 정치는 반드시 국민에게 외면받을 것이다.
실패해야 할 것은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볼모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낡은 정치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어느 한 정치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이념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 말보다 결과로 증명하는 정치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진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