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문/전태수 기자] 영국을 대표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합병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가 성사되면 합산 기업가치가 약 4천억달러, 한화로 약 572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글로벌 제약사가 탄생하게 된다.
다만 양측의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전해졌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공식 논평을 거부했고 BMS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외신도 “협상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실제 거래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합병 임박’보다는 ‘초기 합병 논의’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합병설이 알려진 직후 시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아스트라제네카 주가는 런던 증시에서 장중 7% 이상 급락한 반면, 인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 BMS 주가는 미국 증시 개장 전 거래에서 한때 6%가량 상승했다. 시장이 이번 거래를 아스트라제네카에는 대규모 인수 부담으로, BMS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기회로 해석한 것이다.
|
▲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합병 가능성
|
세계 4위권 제약사 탄생…미국 시장 확대가 핵심
아스트라제네카와 BMS의 합산 기업가치는 합병설이 불거지기 직전 기준 약 4천억달러로 평가된다. 단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일라이릴리와 존슨앤드존슨, 애브비 등에 이어 세계 4위권에 해당하는 규모다. 매출 기준으로도 세계 최대 수준의 제약회사 중 하나로 올라설 전망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합병을 검토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미국 시장 지배력 확대가 꼽힌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6년 상반기 전체 매출의 약 42%를 미국에서 거뒀다. BMS는 최근 분기 매출 가운데 미국 비중이 약 69%에 달한다.
아스트라제네카가 BMS의 영업망과 보험·의료기관 네트워크를 확보하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판매력과 신약 출시 역량을 단숨에 강화할 수 있다. 미국 증시 직접 상장과 현지 생산시설 투자 확대를 추진해 온 아스트라제네카의 최근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제품군도 일정 부분 보완 관계를 형성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폐암·유방암 등 고형암과 희귀질환 분야에 강점을 지닌 반면, BMS는 혈액암과 세포치료제,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양사가 결합하면 고형암부터 혈액암·면역항암제·세포치료제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대 수준의 항암제 포트폴리오가 구축될 수 있다.
항암제 중복이 시너지이자 최대 걸림돌
문제는 양사의 최대 강점인 항암제 사업이 동시에 합병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5년 항암제 부문에서 약 25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BMS 역시 2026년 상반기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항암제에서 거뒀다. 특히 양사는 면역항암제와 폐암·혈액암 치료제 시장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합병 회사가 병원과 보험사에 여러 의약품을 묶어 판매하거나 경쟁 신약의 연구개발을 축소할 가능성도 반독점 당국의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중복되는 치료제나 임상 후기 단계 후보물질의 매각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BMS가 2019년 셀진을 약 800억달러에 인수했을 때도 미국 FTC는 경쟁 제한 우려를 이유로 셀진의 건선 치료제 ‘오테즐라’를 매각하도록 했다. 오테즐라는 이후 약 134억달러에 암젠으로 넘어갔다. 아스트라제네카와 BMS의 합병은 당시보다 규모와 제품 중복 범위가 훨씬 큰 만큼 심사 강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스트라제네카가 합병을 통해 얻을 실익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강력한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과 성장성을 확보한 반면, BMS는 주력 의약품의 특허 만료라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BMS의 대표 제품인 혈액응고억제제 ‘엘리퀴스’와 면역항암제 ‘옵디보’는 2028년을 전후해 특허 보호 약화가 예상된다. 두 제품은 BMS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합병이 이뤄지면 아스트라제네카가 BMS의 신약 후보물질뿐 아니라 특허절벽과 매출 감소 위험까지 떠안게 된다.
영국의 자존심과 미국의 제약 주권…정치권 승인도 변수
이번 합병은 기업 간 거래를 넘어 영국과 미국의 제약산업 주도권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을 대표하는 제약기업이자 런던 증시의 핵심 기업이다. 2014년 미국 화이자의 인수 제안을 거부한 뒤 독자 성장을 이어오며 영국 바이오산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는 합병 이후 연구개발 본부와 투자, 고급 일자리가 미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영국계 기업이 미국의 대표 제약사 BMS를 사실상 인수하는 구조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과 공급망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 FTC의 반독점 심사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의약품 공급망, 현지 생산 투자 등을 둘러싼 정치적 조건이 거래 승인 과정에 붙을 수 있다. 영국 정부 역시 본사와 연구개발 시설 유지, 영국 내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제약업계의 경쟁 구도도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가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을 중심으로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아스트라제네카와 BMS는 항암제 중심의 초대형 연합으로 맞서게 된다. 화이자·머크·로슈·노바티스 등도 신약 인수와 전략적 제휴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형 합병이 반드시 신약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직 통합 과정에서 연구개발 인력이 이탈하거나 유사한 임상시험이 중단될 수 있고,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혁신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현재 성장성이 강한 아스트라제네카가 굳이 대규모 합병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이번 거래의 성패는 572조원이라는 외형보다 중복되는 항암제 사업을 어떻게 정리하고, BMS의 특허절벽을 어떤 신약으로 넘어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두 회사가 공식 협상 단계로 나아가더라도 미국과 영국의 반독점·정치적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