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AI시대 기본소득보다 중요한 기본노동권일할 권리를 잃은 사회는 민주주의의 근육도 잃는다
한국 사회의 기본소득 논쟁은 이제 낯설지 않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은 기본소득을 꺼내 들고, 시민들은 기대와 불안을 함께 드러낸다.
얼마를 지급할 것인가, 누구에게 지급할 것인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반복된다. 그러나 정작 더 근본적인 질문은 뒤로 밀려나 있다. 사람은 단지 돈만으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가.
기본소득은 필요할 수 있다. 기술혁명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에 최소한의 소득 보장은 중요한 안전망이다.
그러나 안전망이 인간의 삶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은 소비하는 존재이기 전에 참여하는 존재다.
사회 안에서 역할을 갖고, 노동을 통해 자존감을 확인하며, 공동체와 연결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지금 한국 사회에 더 절박한 의제는 기본소득보다 기본노동권이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를 몇 개 더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인간다운 노동에 접근할 권리, 기술 변화 속에서도 배제되지 않을 권리, 노동 형태가 달라져도 보호받을 권리를 사회적 기본권으로 세우자는 뜻이다.
AI와 플랫폼 경제는 이미 노동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는 흔들리고,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는 기업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제도 밖에 놓인다.
청년은 취업을 포기하고, 중년은 구조조정에 밀려나며, 노년은 생계를 위해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린다. 이 현실 앞에서 현금 지급만으로 사회적 불안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노동 없는 복지는 사람을 고립시킬 수 있다. 복지는 필요하지만, 복지가 노동의 가치를 대체하는 순간 인간은 공동체의 주체가 아니라 지원금의 수령자로 축소된다.
노동은 돈을 버는 행위만이 아니다. 관계를 만들고, 역할을 확인하고, 내가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유지하는 과정이다.
AI 시대의 핵심 과제도 소득 보전이 아니라 노동의 재설계다. 기술이 반복 업무를 대체한다면 인간은 어떤 노동을 해야 하는가.
돌봄, 교육, 문화, 환경, 지역 공동체 회복 같은 영역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저평가됐던 인간 중심 노동의 가치를 국가가 다시 설계해야 한다.
돌봄 노동은 사회 유지의 핵심이지만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구조에 놓여 있다.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일,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일, 청년의 사회 진입을 돕는 일 역시 시장 논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비용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투자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민이 사회 안에서 역할과 존엄을 가질 때 민주주의는 건강해진다.
노동이 무너질수록 시민은 고립되고, 고립된 시민은 분노와 혐오 정치에 쉽게 끌려간다. 일할 권리를 잃은 사회가 민주주의의 근육까지 잃는 이유다.
정치는 이제 기본소득의 액수 경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을 지원금 수령자로 만들 것인가, 공동체의 주체로 세울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보조 장치일 수 있지만, 사회의 중심 철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인간다운 노동을 통해 사회와 연결될 권리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면 기본노동권을 새로운 사회계약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AI와 플랫폼이 일자리를 재편하는 시대일수록 질문은 더 분명해진다.
얼마를 나눠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그 질문을 회피하는 사회는 경제만 잃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숨결까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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