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공연취소 손배소 승소, 그러나 시장 책임 빠진 판결은 정의의 절반이다“안전” 명분 뒤에 숨은 검열 논란, 법원은 위법성 인정했지만 결정권자 책임은 비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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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이승환 씨와 소속사 드림팩토리, 공연 예매자들이 구미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구미시가 이승환 씨와 소속사, 예매자들에게 총 1억2천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며 공연장 대관 취소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행정기관이 예술인의 표현과 공연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사진=내외신문) |
[내외신문/전태수 기자] 가수 이승환 씨와 소속사 드림팩토리, 공연 예매자들이 구미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구미시가 이승환 씨에게 3천500만 원, 소속사에 7천500만 원, 예매자 100명에게 각 15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총 배상액은 1억2천500만 원이다. 법원이 구미시의 공연장 대관 취소가 부당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이번 판결은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와 공연의 자유가 행정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공연 이틀 전 대관을 취소한 행위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한 예술인의 정치적 견해와 발언 가능성을 이유로 공공 공연장의 사용을 제한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절반의 정의에 그쳤다. 재판부는 구미시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김장호 구미시장 개인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판결의 가장 큰 한계다. 행정기관의 이름으로 내려진 결정이라 하더라도 그 결정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 판단했고, 누군가 요구했으며, 누군가 취소를 지시하거나 승인했다. 그 과정에서 시장의 역할이 있었다면, 그 책임 역시 분명히 물어야 한다.
구미시는 2024년 12월 23일, 이승환 데뷔 35주년 콘서트 ‘헤븐’을 불과 이틀 앞두고 시민과 관객 안전을 이유로 공연장 대관을 취소했다.
당시 김장호 시장은 이승환 씨 측에 정치적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측이 이에 응하지 않자 대관 취소가 이뤄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의 본질은 안전이 아니라 검열이다. 행정권력이 예술가에게 침묵 서약을 요구한 것이며, 이를 거부하자 공연 자체를 막은 것이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연장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은 시민 모두의 공간이며, 예술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양심과 표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예술가가 공연장에서 노래할 권리는 행정기관의 호불호에 따라 허락되거나 박탈될 수 있는 특혜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이 구미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시장 개인의 책임을 묻지 않은 판단은 행정권력 남용에 대한 경고로는 부족하다.
지방자치단체라는 법적 주체가 배상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 결정을 주도한 책임자가 정치적·도덕적·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같은 일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손해배상금은 시민 세금으로 지급되고, 정작 권한을 행사한 사람은 책임에서 빠지는 구조라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이승환 씨가 “못내 아쉬운 판결”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단지 돈을 더 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예술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결정의 책임이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공권력이 시민과 예술가에게 침묵을 요구할 수 있는가. 지방자치단체장이 정치적 이유로 공연을 막을 수 있는가. 그 결정에 대해 개인적 책임 없이 기관 배상만으로 끝낼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항소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이승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한 가수의 공연이 취소됐지만, 내일은 연극이, 강연이, 영화제가, 시민 토론회가 같은 방식으로 막힐 수 있다.
행정기관이 “안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실제로는 정치적 불편함을 관리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는 조용히 후퇴한다. 검열은 늘 거창한 얼굴로 오지 않는다. 때로는 서약서 한 장, 대관 취소 공문 한 장, 안전 우려라는 문장 하나로 다가온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출발점이어야 한다. 구미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어떤 판단과 지시가 있었는지, 그 행위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인지 더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시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정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공권력의 이름 뒤에 숨은 개인 권한자의 책임을 밝혀야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예술의 자유는 행정권력의 허가증 위에 서 있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권한은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시민과 예술가의 입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항소심은 그 상식을 다시 세우는 재판이 되어야 한다.
구미시는 배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주도한 책임자 역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이 사건을 단순한 손해배상 사건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민주주의의 기준점으로 남기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