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찾아 삼만리방황처럼 보였던 선택들, 그러나 시대의 현장에 남은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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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연 대기자 |
직업을 열 번 이상 바꾸면서 알맹이를 찾아 오랫동안 여기저기 방황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성과물 하나 내놓지 못했다. 끈기가 부족했을 수도 있겠지만, 능력이 부족한 탓일 게다.
자의 반 타의 반 직업을 적잖이 바꾼 주요 궤적은 다음과 같다.
● 한국장기신용은행
– 은행원으로 결산 업무 수행 및 외화/채권자금 원천별 수익성 분석
● 이화회계법인(현 영화회계법인)
– 회계감사 및 세무자문 서비스
Knowledgeware(미국 Arther Young 회계법인과 James Martin의 합작법인) 사가 개발한 IEW(Information Engineering Workbench) S/W 판매 및 컨설팅
● Ernst & Young Consulting
BPR, ISP 및 시스템 통합 서비스
● 서우합동회계사무소와 Seoul Inter-Group 설립
회계 및 세무 자문서비스
미국의 Battelle사 및 영국의 The Generics사의 Agent 자격으로 기술 컨설팅
Cross Border M&A 컨설팅
통신서비스 컨설팅: Kolon Consortium(코오롱 그룹, 미국의 Nynex 및 영국의 British Telecom)의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을 위한 Bid Package 작성 자문
Evernet(삼성그룹 및 현대전자그룹 Consortium)의 PCS 사업권 획득을 위한 Bid Package 작성 자문 등
● First Financial Consulting(주) 설립
미국의 Lewtan Technology Inc.의 Agent자격으로 ABS Structuring 컨설팅
● 인터소프트폰(주)
인터넷 전화 서비스 사업 CFO
● 하나로전자결제(주) 설립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계좌이체 및 공과금 수납 서비스 등 제공
국세청의 금(구리, 철 및 유흥업소) 사업자 부가가치세 매입자납부제도 도입
관련 시스템 구축 자문
국세청의 현금영수증 시스템 구축 자문
EITC(근로장려세제) 관련 계좌이체를 통한 일용근로자 임금 지급정보 국세청 통보 서비스 제공
● 스마트뱅킹(주) 창업
점주관리 방식의 현금인출기 서비스 및 상품권 무인 환전기 서비스 제공
● 행복공학재단(69학번 선배들이 설립하고 운영 중인 장애인 복지재단)
신규사업 서비스
정부의 ODA 사업의 일환으로 르완다 국세 행정 서비스 개혁 컨설팅
● 국회의원 보좌관
18대 국회 김혜성 의원 정책보좌관
이후 다수 국회의원 특보 자격으로 국정감사 지원
● 소상공인연합회
법정단체 설립 근거 마련
소상공인 연구소장
●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내외신문 논설위원으로 컬럼 작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 몇 가지를 간추려본다.
이야기(1) - 삼성반도체 특허권 회계감사
노태우 정부 시절,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 산업 괴멸 작전 성공 이후 한국의 반도체 산업 씨를 말리려 들었다. 당시 미국의 재무성 공무원 다수가 광화문 소재 미국 대사관에 본부를 차리고 다양한 책략을 꾸미고 있었다.
주요 공격 포인트는 특허권 침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삼성반도체의 특허권 무단 사용을 약점으로 잡고, 미국의 Texas Instrument사를 통해 자국의 Arther Young(현 Ernst Young) 회계법인에 삼성반도체(현 삼성전자)의 특허권 무단 사용 회계감사를 의뢰하였다.
필자는 Royalty 감사 Incharge 자격으로 기흥공장에 투입되었다. 당시 삼성의 회계감사에 대한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드셌다. 미국 대사관의 강력한 개입으로 회계감사 업무는 재개되었지만, 장기간에 걸친 회계감사가 끝날 때까지 미국은 수시로 업무의 진행 상황을 상세하게 모니터링하면서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당시 삼성반도체의 적자 규모는 그룹 차원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났다. 당시 삼성 간부들은 ‘삼성그룹 전체가 한강을 따라 떠내려가 바다로 휩쓸려 나가 괴멸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실제 당시 삼성 반도체의 재무상황을 보면, Going Concern이 의심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룹의 존망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설립 시점 이후, 백 개가 넘는 삼성측 글로발 판매망을 통해 팔려 나간 반도체(Direct sale) 전부의 수불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전자제품에 부착돼 팔려 나간 반도체(Indirect sale)까지도 포함해야 했다. 회계감사 업무 범위는 삼성 측도 쩔쩔맬 정도로 방대했다.
일을 곧이곧대로 수행하면 출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클린룸이나 연구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력을 다해 일하는 수만명 직원들의 일자리가 일순간에 사라질 지경이었다.
많은 고심 끝에 잔꾀를 냈다. 정밀 재고 실사를 위해 현장 라인을 중단해 줄 것과 전 세계 반도체 판매망 등에 대한 재고조사를 요청했다. 미국 측은 엄청난 금액의 Shut-down Cost 및 출장비를 부담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대신 주어진 상황에서 재고조사를 생략하고 최선(Best Effort basis)을 다해 회계감사 업무를 수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감사의견은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의견거절로 귀결되었다.
감사보고서는 오히려 수천만 달러를 돌려받는 것으로 작성해 제출되었다.
감사가 끝난 이후에도 같이 고생한 삼성 실무진과는 오래도록 정기 모임을 가졌다. 이들 중 다수는 훗날 비서실 사장을 비롯해 임원이나 주요 인사로 승진했다.
당시 미국의 압박에 순순히 굴복했더라면 오늘의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2) - DJ 정부 시절 주류결제시스템 구축 자문
DJ정부는 1998년 –5.5%의 역성장의 위기를 극복하고, 임기 내 연평균 4~5%대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복지 강화를 위해 4대 공적보험을 시행했지만, 성공 여부는 불확실했다. 그 이유는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득 수준을 모르면 건강보험료 제대로 부과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 형평성 이슈가 제기돼 극도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DJ는 자영업자 과표 양성화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위헌 시비를 무릅쓰고, 사업자가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게 여전업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소득세법을 개정해 신용카드 사용자에게는 소득 공제 혜택을, 가맹점에게는 세액공제 혜택을 주었다.
한편 국세청장에게는 주류결제 투명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당시 국세청은 신용카드를 이용한 주류결제 투명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 결제수수료는 자영업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결제대금이 3-4일 후에 입금되는 것도 문제였다.
당시 필자는 안양소재 무인경비 서비스 회사에 신규사업 컨설팅을 하고 있었다. 사업 내용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과의 은행거래망 제휴 계약을 체결하고, 유무선 단말기를 통해 계좌이체나 공과금 수납 등의 은행거래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당시 국세청은 신용카드 결제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거의 결론을 낸 상황이었다.
이때 필자는 무선단말기를 통해 계좌이체 방식으로 주류결제를 하게 되면, 수수료도 0.11%로 낮출 수 있고 결제 금액도 실시간 입금이 가능해지는 강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현금카드 방식이 채택됐다.
결제방식은 주류도매상이 주류 소매상에 주류 배달할 때 휴대하고 있는 무선단말기를 통해 가맹점이 보유하고 있는 주류결제카드로 계좌이체 방식으로 결제를 하고, 은행이 실시간으로 해당 결제정보를 국세청에 통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조흥은행은 점포망이 없는 지방의 경우, 농협에 거래처 확보를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착수 수개월 만에 40만 가맹점을 확보했다. 무이자 수신금액은 4조원을 넘었다. 은행 수익성 개선 효과는 엄청났다.
국세청은 음식점, 유흥주점 및 슈퍼마켓 등의 과표 양성화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주류결제시스템은 4대 보험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이야기(3) - 노무현 정부 시절 근로장려세제 입법에 기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세연구원 김재진 박사(훗날 조세재정연구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근로장려세제(EITC, Earned Income Tax Credit)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탄핵 논란으로 임기 초기에 EITC사업 추진은 불가능했다. 탄핵 논란 이후 청와대는 조세연구원에 EITC 도입 관련 용역을 발주했다.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재정경제부 공무원들은 EITC 도입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표면적 이유는 복지예산의 급속한 팽창 부담이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 Group)에 대한 소득파악 인프라가 부실해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용역 최종보고를 앞두고 김재진 박사의 걱정은 태산이었다. 소득파악 인프라 이슈를 극복할 실무적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필자는 무선단말기를 이용한 임금지급 자동 보고 데모 프로그램을 개발해 김재진 박사에게 전달했다.
김재진 박사는 대통령과 경제 각료가 모인 청와대 최종보고 자리에서 무선금융단말기를 이용해 건설현장에서 일당을 계좌이체로 지급하는 방안을 시연했다. 당시 경제 관료들을 할 말을 잃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돋보기 안경 너머로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쳐다보며, “할 말 없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조세특례제한법에 EITC관련 세법이 신설돼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아쉬웠던 점은 관련법 부칙에 유예기간이 2년으로 늘어졌다는 점이다.
법 개정 이후 김 박사는 국세청을 비롯한 다수 부처의 고위 공직자 다수와 함께 EITC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포함 다수의 영연방 국가와 유럽 국가들을 시찰했다. 귀국 후 김박사는, 영국의 경우 EITC를 연 4회 지급하기 위해 국세청 직원의 50% 정도가 인명별 소득파악 업무에 매달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무선 금융단말기 서비스 사업이 실행된다면 국세청의 인건비 절감효과는 천문학적 수준이 될 것이라며 사업의 대박 가능성을 귀뜸해 주었다.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수십 개에 달하는 EITC 시행 국가에 시스템 수출기회도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근로장려세제의 도입으로, 일용근로자와 영세자영업자 등의 근로 빈곤층에 대한 복지 형평성 수준은 한층 향상됐다. 근로장려세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사회보험을 떠받치는 선진국형 3중 사회안전망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파악률 제고, 복지제도의 형평성 확보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 등의 성과도 상당했다.
2년의 유예기간 종료 후, Business Model 특허까지 확보하는 등의 완벽한 준비를 하고 국세청을 방문해 실무자에게 무선단말기를 이용한 임금 지급보고 서비스를 설명하려는데 실무 공무원들은 들으려조차 하질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헛수고였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무시하는 현상이 있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인력 효율화를 통한 인력 감축 이슈 등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정도가 심할 줄은 몰랐다.
이로 인해 수십 억원을 들여 개발한 단말기와 금융거래 중계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EITC 시행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수백만 사업자들은 분기별로 일용근로자 임금지급보고서를 작성해 국세청에 제출하고 있다. 편의점 등의 사업자들은 알바생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마다 인적상황을 매모해 두어야 하고, 분기별로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
이야기(4) - 18대 국회의원 김혜성 국회의원 정첵 보좌관
행복공학재단에 근무할 때, 69학번 정형원 선배의 소개로 18대 국회 김혜성 의원의 정책보좌관으로 국회에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다.
보좌관들이 함께 일하기를 꺼리는 3대 조건은 여성, 비례, 그리고, 미혼이다. 김혜성 의원은 숙명여대 74학번으로 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필자와의 상호 신뢰는 두터웠다.
갈고 닦은 경험을 입법활동이나 국가예산 절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보람되었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공무원들의 사익 추구 행태나 부정은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여러 방면에서의 음해성 공격이 난무했지만, 김혜성 의원은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었다.
이후 김혜성의원은 국회 재입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지만,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패거리 쌈박질이 공천의 지름길이라는 관행을 극복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여성 정치 지망생 키우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안타깝게도 지방에서 강의를 하다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
환상적 팀웍을 바탕으로 거둔 주요 입법 성과는 다음과 같다.
○ 다문화 가족법 개정을 통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필요시 관련 사무를 법인과 단체에 위탁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고,
지방자치단체에 다문화가족 지원을 담당할 기구와 공무원을 두도록 하였고,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전문인력에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 다문화가족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였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복권기금이 다문화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중기청(훗날 중기부로 확대 개편) 내에 소상공인 정책 전담 조직을 신설하도록 했고,
소상공인연합회라는 법정단체 설립과 소상공인을 위한 소상공인진흥기금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했다.
○ 자영업자에 대한 근로장려세제 적용을 위한 조특법 개정
2007년부터 일용근로자들은 근로장려금을 지급받았지만, 자영업자들은 근로빈곤층에 포함되었음에도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근로장려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었었다. 개념적으로 자영업자도 근로빈곤층(Working poor)에 해당되는 까닭에 근로장려금을 지급받아야 마땅하지만, 정부의 준비소홀로 자영업자에 대한 근로장려세제 적용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끈질긴 노력 끝에 일용근로자보다 6년 늦게 자영업자에게도 근로장려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에 일조했다.
○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개정을 통한 대기업의 공공 정보화 사업 참여 배제
2010년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발주된 20억원 이상의 소프트웨어 계약현황을 보면, 전체 발주건수 중 대기업 계약건수가 전체의 79.6%를 차지하고 있었고, 금액으로는 91.9%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소IT기업은 다단계 하청계약을 통해 중소기업이 수행하지만 그들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정도의 대가만을 받고 있었다.
대기업의 횡포를 바로잡고 불공정 관행을 없애 중소기업이 중견IT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분리‧분할 발주제도를 실행시켰고,
국방이나 안보 등에 해당하지 않는 공공소프트웨어 개발사업에는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IT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불공정 다단계 하청계약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였다.
○ 부가가치세법 개정을 통한 아파트 어린이집 부가가치세 영구 면제
국세청은 2010년 10월경 전국 상당수 아파트대표자회의에 그동안 부과하지 않았던 단지 내 보육시설 임대료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통지서를 발송하였다.
공동주택 보육시설은 영리사업이 아닌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여겼던 터라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고 있었는데 5년을 소급해 납부하라는 요구였다.
이에 아파트어린이집 원장들은 일시에 거액을 납부해야 할 부담으로 다수의 어린이집이 도산할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재정경제부나 국세청의 극렬한 반대를 무릎쓰고 끈질기게 설득해
부가가치세 면세대상에 공동주택 영‧유아 보육시설 임대용역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통과시켰다.
이로써 3만6천여 곳에 달하는 공동주택 어린이집은 현재까지도 관리운영에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
이야기(5) - 장애 이후에도 꾸준히 재활운동을 하면서 알맹이 찾기 도전 중
2022년 2월 어느 날 낮술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던 중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는 119차량에 실려 있었고, 어렴풋이 목동 이대병원 응급실 간판이 보였다. 간단한 외과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심장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의식 회복 후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어 걷기는커녕 두 발로 일어설 수조차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정밀검사 결과 갈비뼈가 네 곳이나 부러져 있었다. 119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생긴 부작용이었다. 재활의학과 담당 의사가 처방한 병명은 ‘불완전 척수손상’이었다. 과격한 CPR의 부작용일 수도 있고 산소 부족으로 신경이 손상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3개월여 입원치료를 받던 기간 중, 죽기 살기로 새벽에 일어나 보행기를 끌어안고 병원 복도를 뺑뺑 돌았다. 퇴원이 가까웠을 시기에는 지팡이에 의지해 찔뚝거리며 걸을 수 있었다. 퇴원 후 현재까지 매일 새벽에 지팡이를 짚고 만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까지 18,023,724 걸음(12,436 Km)를 걸었다.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왼손 마비 증상 때문에 키보드 두드리기가 원만치 못하지만, 이 글을 계기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버릇을 들여보기로 다짐해 본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견지하며 진짜배기 알맹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