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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말하는 인천

-감옥이 학교로 바뀐 도시, 인천의 시작

-한 청년의 각성이 민족 지도자로 이어지다

-기억하지 않는 도시, 역사에서 멀어지는 현재

유향연 | 기사입력 2026/04/13 [08:47]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하는 인천

-감옥이 학교로 바뀐 도시, 인천의 시작

-한 청년의 각성이 민족 지도자로 이어지다

-기억하지 않는 도시, 역사에서 멀어지는 현재

유향연 | 입력 : 2026/04/1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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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 선생(사진=위키피디아)    

 

[내외신문/유향연 기자] 백범 김구에게 인천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절망 속에서 방향을 바꾸고, 개인의 삶을 넘어 민족의 길로 나아가게 된 출발점이었다.

 

유네스코가 2026년을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의 해’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인천에서의 감옥살이와 교육 활동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896년, 스무 살 청년 김창수는 이른바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 감리서에 수감됐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길은 무기력한 수감 생활이 아니었다. 그는 동료 죄수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고, 세상을 이야기했다.

 

그 결과 감옥은 단순한 수감 시설이 아니라 ‘학교’로 불리게 됐다. 1898년 독립신문에는 “옥이 아니오 인천 감리서 학교라고들 한다”는 기록이 실릴 정도였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김구라는 인물이 지닌 본질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총과 폭력의 시대 속에서도 그는 교육을 선택했다. 사람을 바꾸는 힘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신념이 이 시기 이미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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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광복회장과 우원식 국회의장이 10일 오후 서울,여의도 광복회관 로비에서 열린 백범 김구선생 작품전시회     김봉화 기자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무상교육과 평등교육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김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됐다는 점이다.

 

이후 김구의 삶은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이어진다. 임시정부 주석으로서의 역할, 윤봉길·이봉창 의거를 이끈 지도력, 한국광복군 창설까지 이어지는 행보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역사적 서사의 출발점에는 인천 감옥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단순한 청년을 넘어 사상과 책임을 가진 지도자로 변화해갔다.

 

해방 이후 김구가 귀국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인천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인천에서 자신을 도왔던 이들을 찾아 나섰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백범일지’에서 인천을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천은 그에게 있어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만든 근원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인천은 이 역사와 충분히 호흡하고 있는가. 유네스코가 공식적으로 기념의 해를 지정한 지금, 정작 인천 지역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구의 삶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던 공간이, 현재의 도시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지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기록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해석과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김구가 감옥을학교로 바꾸었던 것처럼, 한 공간의 의미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김구가 말하는 인천은 단순한 과거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공간이며, 교육과 깨달음을 통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증거다. 지금 인천이 다시 그 의미를 되살릴 수 있을지,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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