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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의 출발점, 아파트 문화에 대한 성찰

전통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아파트의 진화

상품으로서의 아파트, 계층화된 공간의 탄생

재개발과 정주성의 약화, 아파트 문화의 허점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4/11/29 [09:23]

리모델링의 출발점, 아파트 문화에 대한 성찰

전통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아파트의 진화

상품으로서의 아파트, 계층화된 공간의 탄생

재개발과 정주성의 약화, 아파트 문화의 허점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4/11/29 [09:23]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문화적 상징이자 사회적 지표로 자리 잡았다. 발레리 줄레조가 "가장 한국적인 풍경"이라 칭한 아파트 단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아파트는 외형적으로 서양의 '아파트먼트(apartment)'를 차용했지만, 그 내면은 한국 고유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아파트 문화는 뿌리 깊은 사회적 구조와 욕망, 그리고 허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대한민국의 '리모델링'은 아파트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적 생활 방식과 아파트의 적응

 

한국 아파트는 서양의 아파트먼트와 다르다. 단순히 외관만 비슷할 뿐 내부 구조와 생활 방식은 한국의 전통 한옥과 닮아 있다.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양말이나 실내화를 신으며, 베란다와 화장실을 오갈 때는 플라스틱 슬리퍼를 따로 신는다. 이는 과거 한옥에서 방과 부엌, 화장실을 오갈 때 신발을 신던 생활 방식과 비슷하다. 안마당은 거실이나 베란다로, 다락은 다용도실로 변화하며 한국인의 생활 습관에 맞춘 형태를 띠고 있다. 심지어 바닥 난방도 온돌을 응용한 온수 파이프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파트 단지 또한 전통 마을 구조를 닮아 있다.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와 평상은 단지 입구의 관리 사무소와 경비실로 대체되었으며, 마을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던 우물가는 스포츠센터와 상가로 그 역할이 옮겨갔다. 단지 내 초등학교와 상가 등 근린주구(neighborhood unit) 개념은 큰 도로를 건너지 않고도 대부분의 생활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한국 아파트는 단순히 서양식 건축물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 생활 방식을 담아낸 주거 형태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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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분양광고 이미지 (수도권에 활발한 분양은 정부정책이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파트, 이동성과 상품성의 상징

 

한국에서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이는 끊임없이 거래되며 이동성과 상품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잘 드러난다. 직장이나 학교 등 개인의 상황에 따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아파트는 마치 유목민의 텐트와 같다. 발레리 줄레조는 이를 두고 "아파트는 더 이상 집이 아닌 텐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는 직장과 학교, 또는 새로운 기회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아파트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브랜드화된 이름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된다. 초창기 아파트는 '종암 아파트', '마포 아파트'처럼 지역 이름을 붙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레미안', 'e편한세상'처럼 브랜드 이름이 주요하게 자리 잡았다. 아파트 이름에서 브랜드는 곧 주거의 품질과 계층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계층화된 아파트와 사회적 단면

 

아파트는 단지 상품일 뿐 아니라 사회적 계층을 구분 짓는 도구로도 기능한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의 브랜드, 위치, 평수에 따라 사람들의 계층이 나뉜다. 이는 조선 시대 한양에서 신분에 따라 거주 지역이 달랐던 역사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중촌에 거주하던 중인 계층은 이름부터 거주지에서 유래했다. 마을마다 특정 계층과 직업군이 모여 살던 전통은 오늘날 특정 브랜드 아파트 단지와 평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계층화는 단지 내에서도 벽을 쌓아가며 더욱 심화된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 주민들이 작은 평수 주민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층 간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를 옮기는 것은 단순히 이사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계층과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며,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아파트는 재개발을 통해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다. 발레리 줄레조는 이를 두고 서울을 "하루살이 도시"라고 표현했다. 잘 지어진 아파트조차 내구 연한이 50년 남짓일 뿐, 재개발의 이름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세월에 따라 쌓이는 추억과 정은 아파트에서 찾기 힘들다. 이는 한국인이 아파트에 감정을 쌓기보다는, 투자 가치로 접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는 아파트는 단순히 건축물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인의 주거 형태, 사회적 관계, 그리고 도시 풍경 전반을 바꾼다. 끊임없는 허물기와 재건축은 정주성이 약화된 현대 한국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파트는 한국인의 정서와 욕망,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단지의 형태부터 상품성, 계층화까지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선 한국적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아파트 문화는 대한민국의 허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발레리 줄레조의 지적처럼 아파트를 단순한 풍경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문제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대한민국을 리모델링하는 출발점은 아파트 문화를 반성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인이 삶의 형태와 욕망을 재구성하고, 사회적 계층화를 넘어선 주거 형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파트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시선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곧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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