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의 출발점, 아파트 문화에 대한 성찰전통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아파트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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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이는 끊임없이 거래되며 이동성과 상품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잘 드러난다. 직장이나 학교 등 개인의 상황에 따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아파트는 마치 유목민의 텐트와 같다. 발레리 줄레조는 이를 두고 "아파트는 더 이상 집이 아닌 텐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는 직장과 학교, 또는 새로운 기회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아파트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브랜드화된 이름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된다. 초창기 아파트는 '종암 아파트', '마포 아파트'처럼 지역 이름을 붙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레미안', 'e편한세상'처럼 브랜드 이름이 주요하게 자리 잡았다. 아파트 이름에서 브랜드는 곧 주거의 품질과 계층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아파트는 단지 상품일 뿐 아니라 사회적 계층을 구분 짓는 도구로도 기능한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의 브랜드, 위치, 평수에 따라 사람들의 계층이 나뉜다. 이는 조선 시대 한양에서 신분에 따라 거주 지역이 달랐던 역사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중촌에 거주하던 중인 계층은 이름부터 거주지에서 유래했다. 마을마다 특정 계층과 직업군이 모여 살던 전통은 오늘날 특정 브랜드 아파트 단지와 평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계층화는 단지 내에서도 벽을 쌓아가며 더욱 심화된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 주민들이 작은 평수 주민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층 간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를 옮기는 것은 단순히 이사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계층과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며,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아파트는 재개발을 통해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다. 발레리 줄레조는 이를 두고 서울을 "하루살이 도시"라고 표현했다. 잘 지어진 아파트조차 내구 연한이 50년 남짓일 뿐, 재개발의 이름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세월에 따라 쌓이는 추억과 정은 아파트에서 찾기 힘들다. 이는 한국인이 아파트에 감정을 쌓기보다는, 투자 가치로 접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는 아파트는 단순히 건축물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인의 주거 형태, 사회적 관계, 그리고 도시 풍경 전반을 바꾼다. 끊임없는 허물기와 재건축은 정주성이 약화된 현대 한국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파트는 한국인의 정서와 욕망,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단지의 형태부터 상품성, 계층화까지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선 한국적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아파트 문화는 대한민국의 허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발레리 줄레조의 지적처럼 아파트를 단순한 풍경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문제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대한민국을 리모델링하는 출발점은 아파트 문화를 반성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인이 삶의 형태와 욕망을 재구성하고, 사회적 계층화를 넘어선 주거 형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파트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시선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곧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