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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만든 5개 부족들의 기원

로마의 침공과 켈트족의 몰락, 그리고 잉글랜드의 탄생

앵글로색슨의 정복과 스코틀랜드의 저항: 영국 역사의 변곡점

노르만의 지배와 스코틀랜드 독립 투쟁이 남긴 유산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4/11/27 [10:33]

영국을 만든 5개 부족들의 기원

로마의 침공과 켈트족의 몰락, 그리고 잉글랜드의 탄생

앵글로색슨의 정복과 스코틀랜드의 저항: 영국 역사의 변곡점

노르만의 지배와 스코틀랜드 독립 투쟁이 남긴 유산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4/11/27 [10:33]

브리튼 섬의 역사는 수많은 민족의 침입과 문화적 변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기원전 55년, 로마 제국의 침공을 시작으로 이 지역의 역사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며, 켈트족에서 앵글로색슨족, 그리고 노르만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이 지배권을 두고 다투었다.

 

초기 브리튼 섬에는 켈트족이 정착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켈트족은 문신과 나체 전사로 상징되는 강인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적에게 위협을 가하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전역에 걸쳐 자신들의 문화를 남겼다. 특히 켈트족의 전통은 할로윈의 기원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침공은 브리튼 섬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로마는 남부 지역을 차지하며 도로와 도시를 설계하고 교역을 활성화했다. 대표적인 예로 론디니움(현재 런던)과 바스가 있다. 이와 달리 북부는 로마의 통치에서 제외되며 원주민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했다. 로마의 통치는 브리튼 섬 남부와 북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나누는 경계를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함께 브리튼 섬에는 새로운 침략자가 등장했다. 5세기 중반, 로마군이 브리튼 섬에서 철수하면서 앵글로색슨족이 이 지역을 침공하게 된다.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네덜란드에서 온 이들은 파괴적 전술로 브리튼 섬을 점령하며 켈트족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다. 켈트족은 서쪽으로 밀려났고, 브리튼 섬의 새로운 주인은 앵글로색슨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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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킹도 영국을 침범해 하나의 부족이 되었다. (사진=AI그림)    

 

앵글로색슨족은 새로운 계급 사회와 농경 문화를 구축하며 브리튼 섬에 자신들의 언어를 퍼뜨렸다. 이로 인해 로마의 라틴어와 켈트족의 언어는 말살되고 앵글로색슨 언어가 지배적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약 600년간 지속된 앵글로색슨족의 시대는 1066년 노르만의 침공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한다.

 

노르만디 공국의 공작 기욤은 브리튼 섬을 침공하여 잉글랜드 왕이 되었고, 군사 요새 건설과 세금 제도를 도입하며 국가 체계를 강화했다. 잉글랜드의 지배 세력은 노르만으로 전환되었으나, 스코틀랜드와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13세기,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를 정복한 뒤 스코틀랜드로 눈을 돌렸다. 그는 브리튼 섬 통일을 목표로 군사를 이끌고 스코틀랜드를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코틀랜드의 상징적인 유물을 약탈하며 국민들에게 치욕을 안겼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윌리엄 월리스와 같은 지도자의 저항 아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월리스는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잉글랜드군을 물리치며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결국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인의 저항 정신을 더욱 고취시켰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쟁은 약 30년간 지속되었고, 1328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로써 브리튼 섬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라는 세 지역으로 나뉜 현재의 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브리튼 섬의 역사에서 민족적 갈등과 문화적 융합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켈트족의 흔적, 로마와 앵글로색슨의 영향, 그리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갈등은 오늘날 영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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