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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의 농지전수조사, 농민 재산 뺏기가 아니다…문제는 ‘조사 이후’다

‘농지 약탈·땅값 폭락’ 공포 키우는 정치권…전수조사는 농정의 기초자료 만드는 작업

고령농·상속농·임차농 현실 외면해서도 안 돼…농지은행·연금·임대차 제도 함께 손봐야

경자유전만 반복할 시대 지났다…‘누가 소유하느냐’ 넘어 ‘농지를 농업에 어떻게 쓸 것인가’로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6/10/01 [11:56]

78년 만의 농지전수조사, 농민 재산 뺏기가 아니다…문제는 ‘조사 이후’다

‘농지 약탈·땅값 폭락’ 공포 키우는 정치권…전수조사는 농정의 기초자료 만드는 작업

고령농·상속농·임차농 현실 외면해서도 안 돼…농지은행·연금·임대차 제도 함께 손봐야

경자유전만 반복할 시대 지났다…‘누가 소유하느냐’ 넘어 ‘농지를 농업에 어떻게 쓸 것인가’로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6/10/01 [11:56]

78년 만에 시작된 농지전수조사를 둘러싸고 농촌이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정부가 농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으려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법 농지와 투기 농지를 이번 기회에 모두 정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양쪽 모두 농촌의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

 

농지전수조사는 농민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다. 반대로 조사만 하면 수십 년 묵은 농지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포도 환호도 아닌 정확한 농지 현실의 파악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1차 조사를 실시하고, 2027년에는 그 이전 취득 농지까지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소유관계와 실경작 여부, 휴경, 임대차, 시설 설치 및 전용 여부 등을 조사한다. 정부는 행정정보와 AI를 활용한 기본조사 이후 심층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규모의 농지 실태 파악이 추진된 것은 농지개혁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지금까지 국가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농지 소유와 이용 관계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국민의힘에서는 농지전수조사가 농지 가격 폭락과 거래절벽을 불러오고 정부가 농민의 땅을 헐값에 처분하도록 압박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농민이 느끼는 불안을 정치권이 전달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

 

문제는 ‘조사를 받으면 농지를 빼앗긴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 곧바로 강제 처분된다’는 식으로 문제가 단순화될 경우다.

 

그렇게 되면 제도 개선 논쟁은 사라지고 농촌에는 공포만 남는다.

 

농지전수조사의 진짜 목적은 누가 농지를 갖고 있는지, 실제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지, 합법적 임대인지 관행적인 구두 임대인지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현재의 농지 행정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

 

실제로 농식품부도 조사와 함께 관행적인 구두 임대차를 서면계약으로 전환하는 특별 정비기간을 운영하고, 임차농 권리보호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농촌에서 농지를 소유한 사람과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임대차 관계가 음성화되어 있으면 임차농은 언제든 농사를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을 수 있다.

 

농지전수조사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오히려 실경작자인 임차농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오히려 지금 벌어진 혼란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예상했어야 할 문제다.

78년 동안 사실상 방치해온 농지 소유와 이용 구조를 한꺼번에 들여다보겠다면 농촌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먼저 계산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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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를 바라보는 노인들(ai생성)    

 

고령농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생 농사를 짓다가 몸이 아파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농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에게 농지를 상속받았지만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자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임차농이 수십 년 농사를 짓던 땅의 소유자가 전수조사가 두려워 갑자기 임대차를 끊으면 누가 임차농을 보호할 것인가.

 

농민이 농지를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다면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전수조사보다 먼저 준비됐어야 한다.

 

정부가 조사만 해놓고 “법대로 하겠다”고 한다면 농촌의 불안은 당연히 커진다.

 

실제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심층조사를 위해 기간제 조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영월군의 경우 농지전수조사 현장조사를 담당할 계약직 조사원을 별도로 모집했다.

 

전국 농지의 복잡한 소유·임대·경작 실태를 정확하게 조사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인력과 전문성, 지자체 행정역량이 충분한지도 따져야 한다.

 

몇 명의 조사원과 읍·면·동 담당 공무원에게 방대한 업무를 떠넘겨놓고 국가 농지정책의 기초자료를 만들겠다는 방식이라면 부실 조사 논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속의 강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농지은행의 기능부터 대폭 확대해야 한다.

 

농사를 계속하기 어려운 고령농에게는 농지를 안정적으로 매각하거나 위탁할 길을 열어주고, 그 농지를 청년농·후계농·전업농에게 공급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농지연금도 현실에 맞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농지가 사실상 노후자산인 고령농에게 단순히 “농사를 짓지 않으면 처분하라”고 말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임차농 보호장치도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농지전수조사 때문에 오히려 땅주인이 임차인을 내보내는 일이 생긴다면 정책 목적과 정반대 결과가 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1948년 헌법 이후 한국 농지정책의 중심에는 ‘경자유전’ 원칙이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주와 소작농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26년 농촌은 1949년 농촌과 전혀 다르다.

 

농민은 급격히 고령화됐고 농촌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농업법인, 임차농, 청년농 등 농업의 주체도 다양해졌다.

 

따라서 이제는 ‘누가 농지를 소유하느냐’만큼 ‘농지가 실제 농업에 이용되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즉 경자유전의 정신은 지키되 농지정책의 현실적 기준을 ‘농지농용’까지 확장해 논의할 때가 됐다.

농지는 아파트와 같은 일반적인 부동산이 아니다.

 

식량을 생산하는 생산수단이며 국가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한정된 자원이다.

그렇다고 농민에게 “농지는 공공재니까 당신의 재산권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농사를 지으며 평생 모은 거의 유일한 자산이 농지인 고령농에게 농지가격 하락은 곧 노후자산의 감소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농지전수조사의 성공 여부는 몇 필지를 적발했느냐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투기 목적의 농지는 걸러내고,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농지가 돌아가도록 하며, 고령농에게는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고, 임차농에게는 경작권의 안정성을 주고, 청년농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농지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농지 가격을 무조건 올리는 것도 농정이 아니고 무조건 떨어뜨리는 것도 농정이 아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농정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농민 재산 강탈’이라는 자극적인 말만 던져 농촌의 불안을 정치적으로 소비한다면 대안이 아니다.

정부 역시 “전수조사는 옳은 정책”이라는 당위론 뒤에 숨을 일이 아니다.

 

농촌에서 실제 피해와 혼란이 발생한다면 정책 설계자가 책임지고 고쳐야 한다.

 

78년 만의 농지전수조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한민국이 이제야 농지가 누구의 손에 있고, 누가 실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어떤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됐고, 어느 농지가 농업에서 이탈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농지를 투기상품에서 농업의 생산기반으로 돌려놓고, 고령농에서 청년농으로 자연스럽게 농지가 이동하며, 농지를 팔아야 하는 사람과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이 국가 시스템 안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78년 만의 농지전수조사는 농민을 잡는 조사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대한민국 농정을 다시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조사만 하고 대책이 없다면 또 하나의 행정소동으로 끝날 것이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싸워야 할 대상은 농민도, 농지 소유자도 아니다.

낡고 뒤엉킨 농지제도 그 자체다.

기자 사진
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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