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와 광양에는 가방 하나 들고 전국의 일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플랜트 노동자들이다. 봄가을이면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의 대정비 현장을 지키고, 일감이 끊기면 울산으로, 대산으로, 평택의 반도체 공사장으로 떠난다. 용접, 배관, 제관, 비계. 이 나라 중화학공업의 설비는 이들의 손으로 세워지고 고쳐져 왔다.
이들에게 여수와 광양의 경계는 없다. 이순신대교 하나 건너면 닿는 일터일 뿐이다. 그리고 산업의 위기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사람도 이들이다. 공장이 멈추면 고칠 설비부터 사라지기 때문이다.
플랜트 일은 원래 불안정하다. 대정비와 증설 공사가 몰리는 철에는 일손이 모자라고, 공사가 끝나면 다음 현장이 잡힐 때까지 쉬어야 한다. 그 공백을 버티게 해준 것이 여수와 광양, 두 산단의 일감이었다. 한쪽 현장이 끝나면 다른 쪽 현장이 열렸다. 석유화학 재편과 철강 불황이 겹친 지금, 그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좁아지고 있다.
올해 7월, 정부는 여수산단 석유화학 사업재편안을 승인했다. 여천NCC 3공장에 이어 2공장을 멈추고, 남은 1공장은 롯데케미칼 여수공장과 합친다. 이로써 줄어드는 에틸렌 생산능력만 연 140만 톤이다. 정부는 7천억 원이 넘는 지원을 약속했고, 여수의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은 내년 8월까지 연장됐다.
광양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광양은 지난해 11월 철강 위기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이 됐다. 생산의 88.5%, 수출의 97.5%를 철강에 기대는 도시다. 법인지방소득세는 2022년 876억 원에서 이듬해 78억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광양만권의 두 기둥인 철강과 석유화학이 동시에 흔들리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문제는 대응 방식이다. 올해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두 산단에 투입한 388억 원은 '여수 석유화학'과 '광양 철강'으로 나뉘어 집행된다. 행정구역별, 업종별로 칸을 나눈 것이다. 지원 실적도 여수 몇 개 사, 광양 몇 개 사로 따로 집계된다. 그러나 플랜트 노동자의 삶이 보여주듯 현장은 칸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한쪽 산단의 일감이 줄면 양쪽의 협력업체와 숙련인력이 함께 흔들린다. 광양만권은 행정구역으로는 나뉘어 있지만 노동시장으로는 하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광양만권 산업·고용 실태를 한 장의 지도로 그려야 한다. 원청과 하청, 정비업체, 현장을 옮겨 다니는 기능인력이 어느 산단과 어느 도시를 오가는지 여수·광양·순천이 공동으로 조사해야 한다. 지도 없이 지원하면 가장 약한 고리부터 누락된다. 지금은 이 흐름을 보여주는 통계조차 없다.
둘째, 지원의 기준을 주소지와 사업장이 아니라 생활권과 일의 흐름으로 바꿔야 한다. 현장을 옮겨 다니는 노동자는 어느 한 사업장에 오래 적을 두지 않는다. 특정 도시, 특정 업종에 묶인 지원으로는 이들이 사각지대에 남는다. 고용유지지원금과 생활안정자금이 가장 절실한 사람이 정작 이런 노동자들이다. 통합특별시 체제는 이 칸막이를 걷어낼 좋은 기회다.
셋째, 위기를 전환의 재료로 묶어야 한다. 석유화학의 설비와 부지, 수소와 전력, 그리고 무엇보다 수십 년 쌓인 플랜트 숙련인력은 철강의 저탄소 전환, 이차전지 소재, 앞으로 유치할 첨단산업이 모두 필요로 하는 자원이다. 숙련인력이 광양만권을 떠나 다른 지역 현장으로 흩어지고 나면, 정작 새 산업을 유치할 때 쓸 사람이 없다. 광양만권 안에 수요와 공급이 함께 있다. 따로 떼어 놓으면 각자의 비용이고, 묶으면 권역의 자산이다.
광양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여수 현장에 기대어 사는 광양 시민과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큰 예산이 드는 일이 아니다. 관심의 문제다. 여수시와 함께 광양만권 산업전환 협의체를 꾸리는 일도 단체장의 결단만 있으면 가능하다.
노동 현장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위기의 비용은 늘 가장 바깥의 노동자에게 먼저 도착한다.
여수의 공장 불이 꺼지는 것을 강 건너 불로 볼 수 없다. 두 개의 위기는 하나의 광양만권에서 일어나고 있고, 해법도 광양만권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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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만권정책포럼 연구소장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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