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제 세계의 해법을 말하다…이재명 대통령 UN 연설에 담긴 ‘국가의 자신감’K-컬처 넘어 AI·기후·에너지까지 ‘K-이니셔티브’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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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 연설중인 이재명 대통령 |
이번 연설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K-이니셔티브’다.
이 대통령은 세계적인 K-컬처의 확산 과정에서 형성된 공감과 연대의 경험을 AI와 기후, 에너지 문제로 확장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첫 번째 축은 ‘글로벌 AI 기본사회’다.
AI 기술 발전의 성과가 소수 국가와 기업, 특정 계층에 집중될 경우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AI를 의료·교육·금융 등 국민의 기본적인 삶과 연결하는 ‘AI 기본사회’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정부 국정과제에는 국제협력을 통한 글로벌 AI 이니셔티브와 2030년 참여인구 10억 명이라는 목표도 제시돼 있다.
따라서 이번 유엔 연설은 국내 정책을 국제적 의제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AI 경쟁에서 단순히 “누가 더 강력한 모델과 반도체를 만드는가”를 넘어 “AI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던진 셈이다.
두 번째 축은 녹색 대전환이다.
이 대통령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파리협정에 기반한 기후 대응을 강조했다. 한국은 2028년 칠레와 제4차 유엔 해양총회를 공동 개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후정책을 산업 성장과 대립되는 개념으로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새로운 산업과 기술, 시장을 창출하는 경제 전략으로 연결하려는 접근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조선, 원전, 재생에너지, AI 등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했거나 확보하려는 산업 대부분이 결국 글로벌 에너지 전환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녹색 대전환은 환경정책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전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세 번째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연대다.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와 홍해에서 반복된 해상 봉쇄가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통로가 위협받을 경우 세계인의 일상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배타적 국제기구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국제질서와 유엔의 기능을 존중하면서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는 ‘건설적 기여국 연대’를 제안했다.
이 대목 역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치를 보여준다.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의 영향을 받는 국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협력 구조를 제안하는 위치에 섰다.
‘위기에 노출된 국가’에서 ‘위기 대응의 규칙과 협력을 제안하는 국가’로 외교의 공간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접근법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평화공존이라는 세 가지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북한 핵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접근보다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우선 중단시키고 축소 단계를 거쳐 비핵화를 추진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시했다.
남북관계 역시 상대 체제를 부정하는 경쟁에서 벗어나 재난·보건·기후 등 공동의 문제부터 협력하고 소통 채널을 복원하는 방향이 강조됐다.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비롯한 당사국 간 대화가 다시 시작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는 평화를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경제와 안보의 현실적 조건으로 바라보는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적대가 만들어내는 비용을 줄여 ‘코리아 리스크’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대목은 유엔 개혁이다.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합의가 회의장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실제 현장의 변화로 연결돼야 한다는 취지로 유엔의 변화를 촉구했다.
조직과 사업의 중복을 줄이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며 한정된 자원을 필요한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리가 보다 효과적이고 책임 있게 작동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국이 국제기구에서 단순한 참여국을 넘어 제도 개선에 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겠다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이번 연설에서 읽히는 국가적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경험한 나라에서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로 성장했고,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방산 등 산업 경쟁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K-팝과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음식과 뷰티까지 문화적 영향력이 확대됐다.
최근에는 AI와 첨단산업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엔비디아·브로드컴·오픈AI·앤트로픽 등의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AI와 반도체 분야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문화와 산업, 기술이 동시에 성장하면서 대한민국 외교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도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K-팝, K-드라마, K-푸드에서 시작된 ‘K’는 오랫동안 한국 상품과 문화의 경쟁력을 상징했다.
이번 유엔 연설에서 제시된 ‘K-이니셔티브’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 범위를 국제적 공공재와 정책 아이디어까지 확대하려 했다는 데 있다.
AI 기술을 어떻게 모두의 권리로 연결할 것인가.
기후위기와 경제성장을 어떻게 함께 해결할 것인가.
에너지 공급망의 충격을 국가들이 어떻게 공동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어떻게 낮추고 평화와 경제적 안정으로 연결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이제 이런 질문에 대해 국제사회에 자신의 답을 제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연설에서 제시된 구상이 실제 국제규범이나 다자협력 체제로 발전하려면 참여국 확보와 재원, 외교적 조정, 국내 정책의 성과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특히 AI 기본사회와 ‘건설적 기여국 연대’가 얼마나 많은 국가의 동의를 얻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확인되는 변화는 분명하다.
대한민국 외교의 문장이 “우리를 도와달라”에서 “우리가 함께 해법을 만들겠다”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대한민국이 이제 AI와 기후, 에너지, 문화와 평화의 영역에서 국제사회가 함께 논의할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세계가 정한 질서에 참여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에 자신의 경험과 기술, 문화와 아이디어를 들고 나가 해법을 제안하려 하고 있다.
이번 유엔 연설은 바로 그 변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갖기 시작한 새로운 자신감을 보여준 무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