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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만 만들고 예산은 ‘0원’…기후보험, 폭염수당 넘어 국가 재난안전망으로 다시 설계해야

네팔 빙하 붕괴·대홍수가 보여준 기후재난의 연쇄 피해

엘니뇨·라니냐 따라 폭염·가뭄·집중호우·태풍 위험도 변화

야외근로자부터 농어민·배달노동자·저소득층까지 단계적 확대

‘무노동 무임금’ 논란 피하려면 임금 아닌 재난생계급여로 규정

국비 중심의 시범사업부터 시작하고 기상정보에 따라 자동 지급해야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6/09/18 [08:56]

법만 만들고 예산은 ‘0원’…기후보험, 폭염수당 넘어 국가 재난안전망으로 다시 설계해야

네팔 빙하 붕괴·대홍수가 보여준 기후재난의 연쇄 피해

엘니뇨·라니냐 따라 폭염·가뭄·집중호우·태풍 위험도 변화

야외근로자부터 농어민·배달노동자·저소득층까지 단계적 확대

‘무노동 무임금’ 논란 피하려면 임금 아닌 재난생계급여로 규정

국비 중심의 시범사업부터 시작하고 기상정보에 따라 자동 지급해야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6/09/18 [08:56]

정부가 야외근로자의 폭염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추진한 기후보험이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 한 푼도 반영되지 못하면서 시작부터 좌초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법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사업 대상과 지급 기준, 정부 부처 간 역할, 지방비 부담 방식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해 국고보조사업 적격성 심사에서 두 차례나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후보험의 필요성까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기후재난은 더 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소득, 주거와 건강, 농업과 산업을 동시에 흔드는 현실적인 경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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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폭염으로 해수욕장으로 몰린 사람들(사진=who유럽사무소 갈무리)    

 

네팔 사태가 보여준 것은 ‘재난 이후의 생계 붕괴’

 

2026년 8월 네팔에서는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대규모 홍수와 토석류가 발생했습니다. UNDP에 따르면 피해 지역에서는 막대한 양의 잔해가 발생했고, 농업 의존도가 높은 취약지역 주민들의 주택과 농지, 가축, 일자리와 전력시설이 동시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 주민 상당수는 재난이 발생하기 전부터 기본적인 생활과 공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던 계층이었습니다.

 

UNDP 네팔 피해 분석

 

네팔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기후재난은 단순히 사람이 다치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도로가 끊기고 전력이 멈추며 농작물이 사라지고 일자리까지 없어집니다. 재난에서 살아남더라도 소득이 끊긴 취약계층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기후보험도 폭염으로 일을 쉬게 된 건설근로자에게 며칠간 보험금을 지급하는 수준을 넘어야 합니다. 폭염·한파·태풍·홍수·산사태·가뭄으로 생계가 중단된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과 생활비를 신속하게 지급하는 ‘기후재난 소득안전망’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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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에는 강한 엘니뇨까지 이러한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적도 태평양에서 엘니뇨가 발달하고 있으며 9∼12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약 90%로 전망했다. 엘니뇨는 지역에 따라 폭우와 홍수, 가뭄, 폭염, 태풍 활동의 증가 또는 감소를 서로 다르게 일으    

 

엘니뇨·라니냐는 재난의 양상까지 바꿉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변화로 발생하지만 영향은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엘니뇨가 나타나면 지역에 따라 폭염과 가뭄이 심해지거나 집중호우와 홍수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라니냐 역시 강수량과 태풍의 발생 위치, 이동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특정 태풍이나 홍수를 무조건 엘니뇨·라니냐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온도, 대기 흐름, 지역 지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후변동에 따라 위험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세계기상기구는 엘니뇨가 폭염과 집중호우를 비롯한 기후 극단현상을 악화시키고, 농업·에너지·보건·수자원·공급망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동시에 정확한 예보와 조기경보를 활용하면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세계기상기구 엘니뇨 전망

 

우리나라 역시 여름철 폭염만 대비해서는 부족합니다. 태풍과 집중호우, 겨울철 한파, 농작물 냉해와 가뭄까지 포함하는 계절별 기후보험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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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에 멈춘 백령도 (사진=ai활용)    

 

‘무노동 무임금’이 아니라 재난으로 인한 생계손실 보전

 

기후보험이 적격성 심사에서 지적받은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보험금 지급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보험금의 성격을 명확하게 정하면 풀 수 있습니다.

 

기후보험금은 사용자가 지급하는 임금이나 휴업수당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기후재난으로 발생한 생계손실을 보전하는 재난급여로 규정해야 합니다. 폭염경보로 정부나 발주기관이 작업중지를 명령했다면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가정책에 따라 일을 멈춘 것입니다.

 

따라서 지급 명칭도 ‘임금보전금’보다는 ‘기후재난 생계급여’ 또는 ‘기후위기 소득보장보험금’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재보험은 다치거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보상하고, 고용보험은 실업 상태를 지원하며, 기후보험은 공식적인 기상특보와 작업중지로 발생한 단기 소득손실을 보전하도록 역할을 구분하면 중복 논란도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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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동구 노인인력개발센터, 폭염 속 독거 어르신 안부전화로 안전망 구축     조성화

 

기상특보와 연동해 자동 지급해야 합니다

 

기후보험은 피해자가 복잡한 서류를 제출하고 손해 규모를 일일이 입증하는 기존 보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상청이 일정 수준 이상의 폭염·한파·강풍·호우특보를 발령하고, 지방자치단체나 발주기관이 작업중지 사실을 확인하면 보험금이 자동으로 지급되는 지수형 보험이 적절합니다.

 

예를 들어 체감온도와 폭염경보, 강수량과 풍속, 하천 수위, 태풍의 영향권 진입 여부를 지급 기준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건설근로자 전자카드, 고용보험 자료, 공공공사 출입기록과 연계하면 실제 작업 여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상관측 지점과 실제 작업장의 날씨가 달라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기준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지역별 자동기상관측장비와 민간 기상데이터를 함께 활용하고, 이의신청 절차도 마련해야 합니다.

 

국비 70~90%로 시작하고 취약지역 부담을 낮춰야

 

당초 사업은 지방비 50% 부담으로 설계돼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일수록 참여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정작 기후재난에 취약한 농어촌과 산간·해안지역이 재정 부족으로 사업에서 빠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시범사업은 국비 70%, 지방비 20%, 공공발주기관이나 사업주가 10%를 부담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재정자립도가 낮거나 특별재난지역으로 반복 지정되는 지역은 국비 부담을 90%까지 높여야 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건설공사에는 발주자와 시공사가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가 모든 위험을 떠안기 어렵다면 국가가 대형 재난의 최종 위험을 분담하는 재보험 구조도 필요합니다. 평상시 보험료는 정부·지자체·사업주가 나눠 부담하고, 예측 범위를 넘어선 대형 재난은 국가재보험이나 기후재난기금으로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기후보험의 1단계 대상은 공공건설 현장의 일용근로자로 하되 이후 다음과 같이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 건설·택배·배달·환경미화 등 야외근로자
  • 농민·어민·축산농가와 계절근로자
  • 노점상과 이동판매자, 영세 자영업자
  • 반지하·노후주택·재해위험지역 거주자
  • 독거노인·장애인·저소득층과 에너지 취약계층
  • 태풍·홍수로 휴업한 소상공인과 관광업 종사자

주택과 상가의 물적 피해는 기존 풍수해·지진재해보험과 연계하고, 기후보험은 소득 중단과 긴급생활비를 담당하도록 구분해야 합니다. 행정안전부의 풍수해·지진재해보험은 주택과 온실, 소상공인 상가·공장의 재산 피해를 보장하고 있어 두 제도를 연결하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풍수해·지진재해보험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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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성훈 인천광역시교육감 개학 앞두고 폭염 대응 철저 지시     조성화

 

예산 50억원부터 살려 실증해야 합니다

 

첫해부터 전국적인 거대 사업을 만들려고 하면 다시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폭염이 심한 내륙지역, 태풍과 침수 위험이 큰 해안지역, 농어업 비중이 높은 지역을 선정해 위험 유형별 시범사업을 시행해야 합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총괄하고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와 작업중지 기준, 행정안전부는 재난·풍수해보험 연계, 금융위원회는 보험상품과 재보험, 기상청은 지급지수를 맡는 공동책임 체계가 필요합니다.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사업 책임자를 한 명으로 명확히 지정해야 합니다.

 

시범사업이 필요한 이유는 예산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폭염과 태풍이 왔을 때 누구에게 얼마나 빨리 지급되는지 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급 속도, 사각지대, 부정수급, 소득안정 효과를 1년 동안 평가한 뒤 대상과 지역을 확대하면 됩니다.

 

법이 통과됐다고 제도가 저절로 시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준비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반드시 필요한 정책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보완입니다. 정부는 50억원 규모의 시범사업 예산을 다시 마련하되, 법적 성격과 지급 기준, 부처별 책임, 재원 분담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기후보험은 비가 오거나 더울 때 나눠주는 일회성 지원금이 아닙니다. 기후재난으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가장 늦게 회복하는 국민을 지키는 사회안전망입니다. 네팔의 비극이 보여주듯 기후재난은 예고 없이 주거와 일자리, 농업과 기반시설을 한꺼번에 무너뜨립니다. 재난이 닥친 뒤 성금을 모으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보 단계부터 생계와 회복을 보장하는 제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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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인천본부 기자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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