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신속심사로 지역 반도체 생태계에 ‘속도’ 불어 넣는다.비수도권 중소·중견기업 금융 지원 구조 혁신,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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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이 업체 제품을 보고 있다(사진/산업은행 제공) |
[내외신문/전태수 기자] 한국산업은행이 첨단전략산업기금을 활용한 신속심사 제도를 통해 비수도권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지역 산업 생태계와 국가 전략산업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정책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산업은행은 4월 13일 충북 오송에 위치한 반도체 부품기업 ㈜샘씨엔에스를 직접 방문했다. 이 기업은 반도체 테스트 공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세라믹 STF를 국산화한 중견기업으로, 그동안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기술 영역을 국내 기술로 대체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산업은행의 이번 방문은 단순한 현장 점검을 넘어, 신속심사 제도를 통해 지원된 자금이 실제 설비 투자와 생산 역량 강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신속심사 제도는 기존 금융 지원 체계의 속도와 절차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비수도권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과 자금 조달 속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고, 이는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산업은행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완화하기 위해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의사결정 구조를 압축했다. 국민성장펀드 사무국에서 검토가 이루어진 뒤 소위원회에서 빠르게 심의하고, 최종적으로 기금운용심의회에서 의결하는 방식으로 흐름을 재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행정 효율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금융이 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도의 속도를 끌어올림으로써 산업 발전의 병목을 해소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전략산업은 투자 타이밍이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신속심사 제도는 사실상 ‘시간에 대한 금융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샘씨엔에스 사례는 이러한 정책 방향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기업이 생산하는 STF는 반도체 웨이퍼의 전기적 성능을 평가하는 프로브카드의 핵심 부품으로, 고밀도 신호 전달과 정밀한 테스트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이다.
과거에는 해외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던 영역이었으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안정성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이번 설비 투자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는 단순한 생산량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테스트 부품의 국산화율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대응력이 강화되고, 이는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도체 벨트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파급 효과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샘씨엔에스가 속한 와이씨 계열 전반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와이씨 계열은 반도체 검사장비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해온 기업군으로, 지역 기반의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설비 투자를 이어갈 경우, 단일 기업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이번 지원의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기존의 금융 지원이 개별 기업 단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번 사례는 특정 산업군과 지역 클러스터를 동시에 고려한 ‘생태계 금융’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산업 정책과 금융 정책이 분리되어 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방향을 시사한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이번 지원을 신속심사 제도의 성공 사례로 평가하며, 향후 비수도권 기업에 대한 지원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발언은 단순한 계획 발표라기보다, 금융기관이 국가 산업 전략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담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자본 흐름을 재조정하고, 지역 산업의 성장 동력을 금융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수도권 집중 구조와 대기업 중심 산업 체계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러나 첨단 산업 경쟁이 심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현재의 환경에서는, 지역 기반 중소·중견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은 특정 기술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업의 세밀한 부분을 지탱하는 핵심 축을 담당한다.
산업은행의 이번 행보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금융이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산업 전략의 일부로 작동할 때, 지역과 산업, 기술과 자본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그 흐름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산업의 경쟁력도 함께 상승한다.
충북 오송의 공장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은, 한국 산업 정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처럼 보인다. 금융이 시간을 단축하고, 기술이 국산화를 이루며, 지역이 성장의 거점으로 떠오르는 장면. 그 장면이 축적될수록 한국의 첨단 산업은 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