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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의 명분보다 앞서야 할 인간의 생명
-편 가르기를 넘어선 인권의 보편적 기준
-고통을 멈추는 것이 정치의 출발점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6/04/13 [08:40]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의 명분보다 앞서야 할 인간의 생명
-편 가르기를 넘어선 인권의 보편적 기준
-고통을 멈추는 것이 정치의 출발점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6/04/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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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의 사진이 마음을 찢어놓는다. 붉게 충혈된 눈, 멍으로 짙게 물든 얼굴,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정면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시선. 그 눈빛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분노라는 말로도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어떤 상태다.    (사진=SNS 출처) 

 

[내외신문/전태수 기자] 한 장의 사진이 우리를 멈춰 세운다. 붉게 충혈된 눈과 짙게 내려앉은 멍,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정면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얼굴. 그 눈빛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단순한 전쟁의 한 장면인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고통의 극한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사태를 두고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간인의 희생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발언은 외교적 균형을 맞추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전쟁을 바라보는 최소한의 기준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에 가깝다.

 

전쟁에는 늘 이유가 따라붙는다. 역사, 안보, 보복, 그리고 정의라는 이름들. 그러나 그 모든 명분이 개인의 생명 위에 놓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정당성을 유지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그 명분에 너무 쉽게 설득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특정 국가를 지지하며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대편을 악으로 규정하며 분노를 쏟아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바로 민간인의 존재다. 아이와 여성, 아무런 선택권 없이 그 자리에 놓인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부수적 피해’라는 이름으로 밀려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또 하나의 핵심은 ‘선택적 인식’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편’의 고통에는 민감하면서도, ‘상대편’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진다. 같은 눈물임에도, 같은 죽음임에도 그것을 다르게 해석한다. 그러나 인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인권은 본질적으로 편을 가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되는 절대적 가치다.

 

전쟁은 늘 인간을 숫자로 만든다.

 

사망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난민 몇 만 명. 그러나 그 숫자 하나하나는 이름을 가진 삶이다. 가족이 있고, 기억이 있고, 미래가 있었던 존재들이다. 우리가 사진 속에서 마주한 그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눈에 맺힌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한 증언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의 증폭이 아니라 기준의 회복이다.

 

분노는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문제는 더욱 깊어진다. “저들도 당해봐야 한다”는 말은 순간의 감정일 수 있지만, 그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즉각적인 휴전과 인도적 지원”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외교적 해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우선에 두겠다는 선언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태도다.

 

이스라엘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국가의 행동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문제다.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여전히 편 가르기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비극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사진 속 여성의 눈은 묻는다. 당신은 이 고통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분노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멈춰 세울 이유로 받아들일 것인가.

 

인권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순간에 드러난다.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지 않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선택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기준이 인간의 존엄이라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기자 사진
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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